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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아메리카노

늬에게, 부엌


  사람은 아는 것만 보이는 건지, 아는 것만 보려는 건지.
  몇 없는 늬에게의 부엌 사진을 보다가 앗!, 하고 눈이 번쩍.
  마리아주 프레르의 틴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하더라도 까맣게 몰랐던 프랑스의 홍차 브랜드. 일순간 임페리얼 웨딩의 달달한 향이 퍼지는 것만 같아 머리가 아늑해진다. 늬에게에 이 차가 있었다는 건 오늘에서야 알았다. 내가 임페리얼 웨딩을 알게 된 건 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몰랐던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늬에게에서 나는 소다유즈 아니면 연한 커피를 주로 마셨다. 가끔 기린 이치방을 마시기도 했지만 홍차 메뉴는 쳐다도 안 봤었네. 그때 홍차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마리아주 프레르의 임페리얼 웨딩과 좀 더 일찍 만날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그냥 조금 신기하면서도 우습다.
  그리고 이렇게 비스윗온과 늬에게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늘었구나, 생각하니 너무 마음 따듯해진다.


  4월이면 나는 백수가 된다. 자발적 백수는 축하도 받을 수 있고 좋다.
  4월 말까지 회사를 다닌다면 만 3년을 꽈악 채우고 퇴사할 수 있었겠지만, 고작 그 때문에 4월 말까지 참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이고, 내 마음 상태야 더 말할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나는 4월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 머언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러 들어오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4월이다. 한창 햇살이 따뜻해질 무렵, 대낮에 혼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조용히 카페놀이도 할 수 있다. 이제 늬에게는 없지만, 연남동 벚꽃길은 그대로 있고 봄에만 예쁜 학교에도 갈 수 있다.
  이런 4월을 나는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다.


  늬에게는 없지만 봄은 기어이 오고, 먼 곳에서 사랑하는 님도 온다.
  늬에게 현관 너머로 보이던 벚꽃들이, 그걸 함께 보았던 이가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