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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될래

추억




  나는 이별 후에 다가올,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이 늘어가는 게 싫었다. 같이 걸었던 거리가, 같이 들었던 음악이, 같이 보던 풍경들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것이 되어 나를 찾아오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거리는 나 혼자서 걷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혼자서만 듣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도 혼자서 보려고 했었다. 그렇게 나의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오려고 하면 그걸 막으려고 기를 썼었다. 심지어 마음의 공간에조차 빈틈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반쪽짜리-어쩌면 그 이하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하니 정말 남는 게 없었다. 마음도 아프지 않았고, 추억이랄 것도 없는 그저 스쳐지나간 사랑이 되어 있었다. 결국 사랑도 주어야 그 양이 많든 적든 돌아오는 게 있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 나는 많이 두렵다. 우리가 함께 한 수많은 시공간들을 훗날, 나는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 거리들이, 그 장소들이, 그 광경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날이 올까. 어쩌면 나는 그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올 날이 찾아올 거란 사실이 더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많은 시공간을 허용하고 말았다. 내겐 너무나 유의미한 시공간들을.
  그 추억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감당할 수 있으면 어떡하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 한 시공간의 추억은 분명 다르게 적혔을 테니.


  마음이 춥다.